21세기 어른이 쇼핑몰에서 만난 축음기蓄音機(1)

스트리밍Streaming 대신 바이닐Vinyl

반찬거리를 사러 가끔 방문하는 모 대형쇼핑몰 옆에 ‘남자들을 위한 쇼핑몰’이 들어섰습니다. 얼핏보니 온갖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 있더군요. — 사실 전자제품을 남성들만 좋아한다는 것도 편견이겠지만 —

어쨌든 전자제품 자체를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구입하지 않다보니 그다지 방문의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쇼핑몰 안쪽으로 마블Marvel의 아이언맨Iron Man 피규어가 제게 손짓을 하더군요.

1:1 스케일 인피니티 워Infinity War 버전 아이언맨의 손짓에 저는 순식간에 매장 내부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어쩌면 닥터 스트레인지Doctor Strange의 슬링 링Sling Ring이 작동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분명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죄송합니다. 이건 농담입니다. —

장바구니를 옆에 끼고, 쇼핑몰 안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마블과 DC의 피규어뿐만 아니라 드론과 무선조종 자동차, 비행기 같은 어른들 — 요즘은 ‘어른이’라는 표현도 쓰더군요. — 을 위한 장난감도 눈에 띄고, 자전거 퀵보드와 같은 레저용품과 의류, 각종 휴대폰과 관련 액세서리 그리고 랩탑과 게임기, 오디오, 소형 대형 가전제품까지 꽤나 많은 종류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와인과 위스키, 커피까지… 마치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21세기 온라인 쇼핑몰이 아닌 오프라인 쇼핑몰에, 그것도 전자제품이 가득 진열된 곳에 있다는 사실은 꽤나 오랜만의 경험이었습니다. 문득 옛날 옛적 용산전자상가를 배회하던 기분도 들더군요. 제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곳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플레이스테이션과 겜보이 진열대 앞쪽에 가지런히 놓여진 축음기蓄音機 였습니다.

Photo © GettyImageBank

네! 이렇게 생긴 걸 과거 — 라고 해봐야 불과 20~30년 전 이지만 — 에는 축음기Phonograph라고 불렀습니다. 전축電蓄, 턴테이블Turntable, LP 플레이어 라고도 불렸었죠. 정확히 영어로는 Turntable, 또는 Vinyl Record Player 라는 명칭이 맞다고 합니다.

작동원리는 저 동그랗고 납작한 검은색 플라스틱을 레코드판, 바이닐이라고 부르는데 이게 회전하는 상태에서 축음기의 바늘 — 정말 바늘처럼 얇은 부분 — 을 레코드판 표면의 원형으로 난 홈에 올려놓으면 미세한 홈을 따라서 진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진동을 음향으로 변화시켜 내보내면 비로서 음악을 듣게 됩니다. 뭔가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수동식 그라인더에 곱게 간 원두를 모카포트에 넣어서 끓여내는 정성이 느껴지는 설명이네요.

음… 아무튼 솔직히 많이 의아했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는 물론이고 컴팩트디스크Compact Disc로도 잘 안 듣는 음악을! 그것도 카세트테이프보다 더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최초의 음악재생도구인 축음기로? 그걸 최신형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라는 생각들이 한동안 제 뉴런Neuron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혹시나 음악 매니아들만 찾아오는 매장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저같은 일반 쇼핑객들만 붐빌뿐 ‘아날로그 우월주의자’나 ‘바이닐 레코드 찬양자’라고 불릴만한 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런 명칭으로 불리는 분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이걸 왜 갖다놨지?’, ‘이게 설마 팔리나?’ 이것이 제가 처음 품었던 의문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이런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 중에 10대와 20대도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과거의 향수 또는 과거의 취미를 이어가는 분들이 주소비층이지만 새로운 소비층으로 10대와 20대가 합류했다는 점은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2019년 1월 미국의 경제잡지이자 ‘자본주의의 도구Forbes – The Capitalist Tool. — 이게 이 회사의 모토입니다. — ’인 포브스Forbes는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실었습니다. 포브스가 인용한 버즈엔젤BuzzAngle의 ‘연례 음악 소비 보고서’라는 뭔가 거창해보이는 문서에 따르면, 바이닐 레코드 판매량이 2017년에 비해 두 자릿수 증가하여 2018년에는 거의 천 만장 증가했다는 내용이었죠.

Photo © GettyImageBank

2019년 10월 더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바이닐 레코드의 이상한 부흥The strange revival of vinyl records.’이라는 기사를 통해 컴팩트디스크Compact Disc의 소비가 급속도로 감소하는 반면 오히려 바이닐 레코드는 판매가 증가하고 있음을 기사화했습니다.

물론 우린 음악을 스트리밍Streaming으로 가장 많이 듣고, 거기에 유튜브YouTube 등을 통해 뮤직비디오Music Video로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아주 작지만 좁은 틈사이로 불편한 기계식 아날로그를 ‘꽁냥’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미세하지만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아날로그Analogue, 레트로Retro, 기계식Mechanical, 로터리Rotary 방식의 문화, 기기, 방법, 스타일은 분명 현재보다는 이전 시대에 활발히 소비되고 사용되며 누리던 것들입니다. 과거에 이미 이러한 방식을 경험했던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오는 존재들이죠. 하지만 이러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새로운 문물(!) 입니다. 세상 힙Hip하고, 쿨Cool하며, 멋Classy스러운 것들이죠. — 이런 표현은 역시 잘 입에 안붙네요. 어색합니다. —

그렇다면 모든 아날로그가 다시 부활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게 될까요? 아무래도 그건 힘들어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날로그는 새로운 문화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아날로그를 즐기기엔 너무 편하게 변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버리고 과거의 유선전화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전지구적 반란이 일어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사실 사용하기에 너무 귀찮다는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물론 기꺼이 새로운 경험을 감수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정도 딱 거기까지일 듯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축음기와 그 옆에 놓인 낡아보이는 — 사실은 새롭게 제작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 레코드판을 촬영해서 소셜미디어에 보여줄 수 있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즐길 수 있어야만 이 경험의 생명력은 지속될 수 있겠죠.

글 Written by. 김영욱 Kim Youngwook

이 기사는 인더뉴스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This article was written with iN THE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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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데 도움이 된, 읽고 재미있었던 글과 기사들

The strange revival of vinyl records

from. The Economist https://www.economist.com/graphic-detail/2019/10/18/the-strange-revival-of-vinyl-records

Is Vinyl’s Comeback Here to Stay?

from. Pitchfork https://pitchfork.com/features/article/is-vinyls-comeback-here-to-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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